조항의 내용
이 글은 계약서 없이 전화와 메신저로 일을 맡은 1인 영상 편집 프리랜서를 위한 해설입니다. 다음 상황을 가정합니다. 프리랜서 A는 지인의 소개로 소규모 업체 B의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홍보 영상 4편을 편당 80만 원에 편집하기로 했습니다. 그 뒤 메신저로는 원본 파일과 수정 요청만 오갔고, 금액을 다시 적은 메시지는 없습니다. A가 4편을 모두 납품하고 대금을 청구하자 B는 "금액을 확정한 적이 없다"며 절반만 지급하겠다고 답했습니다.
A가 알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계약서가 없는 통화 약정도 계약으로서 효력이 있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이 금액을 부인할 때 무엇으로 그 금액을 증명하는지입니다. 이 글은 계약의 성립과 약정 금액을 나누어 살펴보는 방식으로 답합니다. 계약이 성립했다는 점은 작업 지시와 납품 기록으로 비교적 쉽게 드러나지만, 금액은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따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법이 서면을 효력 요건으로 정한 예외가 무엇인지도 구별해 설명합니다.
구두 계약에는 조항을 적은 문서가 없으므로, 이 글에서 말하는 조항은 통화에서 합의한 개별 내용을 뜻합니다. 사례에서는 작업 대상과 편수, 단가가 합의된 내용이고, 수정 횟수와 지급일은 정하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분쟁을 정리할 때는 먼저 합의된 항목과 비어 있는 항목을 나누어 적어 두는 것이 출발점이 됩니다. 비어 있는 항목은 법률의 기본 규정이나 거래 관행으로 채워지고, 합의된 항목은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제가 됩니다.
근거 법령
민법은 계약의 방식에 관해 원칙적으로 서면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청약과 승낙의 의사가 합치하면 계약이 성립하며(민법 제527조 이하), 말로 한 합의도 이 요건을 충족합니다. A와 B의 약정은 일의 완성을 약속하고 그 결과에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는 도급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664조). 보수는 완성된 목적물을 인도할 때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고, 목적물의 인도가 필요 없는 경우에는 일을 완성한 뒤 지체 없이 지급해야 합니다(민법 제665조 제1항).
증명의 부담과 방법은 민사소송법의 원칙에 따릅니다. 계약의 성립과 그 내용을 주장하는 쪽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 일반 원칙이며, 법원은 제출된 증거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해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실을 판단합니다(민사소송법 제202조). 메신저 대화나 이메일 같은 전자적 기록도 전자적 형태라는 이유만으로 문서로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않습니다(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제4조 제1항). 따라서 계약서가 없다는 사실은 대부분 계약의 효력 문제가 아니라 증명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사례에 적용하면, A와 B가 지급일을 따로 정하지 않았더라도 A는 완성본을 넘긴 시점부터 보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B가 절반만 주겠다고 답한 것은 지급 시기가 아니라 액수를 다투는 것이므로, A는 약정 단가를 증명해야 하는 쪽에 서게 됩니다. 반대로 B가 이미 일부를 지급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지급 사실은 B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 일반 원칙입니다. 누가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를 먼저 나누어 두면 어떤 자료를 우선 모아야 하는지가 정해집니다.
효력이 인정되는 경우
일이 실제로 진행되었고 결과물이 넘어갔다면 계약이 성립했다는 점은 여러 기록에서 드러납니다. B가 원본 파일을 보내고 수정 의견을 주었으며 완성본을 받아 사용했다면, 일을 맡기고 받아들인 의사가 행동으로 표시된 것으로 볼 여지가 큽니다. 이런 경우 B가 실제로 다투는 대상은 계약의 존재가 아니라 보수의 액수가 됩니다.
금액이 쟁점일 때는 하나의 결정적 증거보다 여러 간접 사실을 맞추어 보는 방식이 쓰입니다. 통화 직후 A가 "말씀하신 대로 편당 80만 원으로 진행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B가 이를 반박하지 않은 채 작업 지시를 이어 갔다면, 그 금액을 전제로 거래가 진행되었다는 정황이 됩니다. 같은 단가에 맞춘 일부 입금 내역, 같은 업체와 과거에 같은 단가로 거래한 기록, 발행한 견적서나 세금계산서도 같은 방향의 자료입니다. 금액 약정 자체가 증명되지 않더라도 보수를 지급하기로 한 사실이 인정되면, 작업량과 거래 관행 등을 고려해 상당한 보수가 얼마인지를 따지는 문제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통화 녹음도 자료가 됩니다.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 한쪽이 그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가 금지하는 타인 간 대화의 녹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녹음이 있다면 원본 파일을 손대지 않고 보존하고, 녹취록을 따로 만들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녹음 파일은 증거 제출 목적 범위에서 사용하고 제3자에게 퍼뜨리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메신저 기록을 증거로 쓸 때는 보존 방법도 확인해야 합니다. 필요한 대화만 잘라 캡처하면 앞뒤 맥락을 두고 다툼이 생길 수 있으므로, 대화방 전체를 내보내기 기능으로 백업하고 캡처 화면에는 날짜와 상대방 계정 이름이 함께 보이도록 합니다. 이메일은 받은 편지를 지우지 않고 원본 상태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휴대전화를 바꾸기 전에는 대화 기록을 따로 옮겨 두어야 자료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업자 사이의 위탁 거래가 하도급법 적용 대상이라면 원사업자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수급사업자에게 계약 내용을 적은 서면을 발급해야 합니다(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서면 발급 의무 위반을 조사·제재하고, 업종별 표준하도급계약서를 마련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의무는 원사업자에게 지운 것이므로 서면이 없다는 사실이 수급사업자의 대금 청구를 막는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용 여부는 당사자의 사업 규모와 위탁 유형에 따라 달라지므로 거래별로 확인해야 합니다.
무효·취소되는 경우
법이 서면을 효력 요건으로 정한 경우에는 구두 약정만으로 효과가 생기지 않습니다. 보증은 보증인의 기명날인이나 서명이 있는 서면으로 보증 의사가 표시되어야 효력이 생기며, 그 의사가 전자적 형태로 표시된 경우에는 효력이 없습니다(민법 제428조의2 제1항). 예를 들어 B의 대표가 통화에서 "회사가 못 주면 내가 개인적으로 대신 주겠다"고 말했더라도 그 말만으로는 대표 개인에게 보증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증여는 서면이 없어도 성립하지만 각 당사자가 해제할 수 있고(민법 제555조),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그 해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민법 제558조).
방식과 관계없이 내용 때문에 효력을 잃는 경우는 구두 계약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약정은 무효이고(민법 제103조), 궁박·경솔·무경험으로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약정도 무효입니다(민법 제104조).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으면 취소할 수 있지만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취소할 수 없고(민법 제109조),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10조). 구두 약정은 내용이 기록되지 않아 "그런 조건인 줄 몰랐다"는 주장이 나오기 쉬우므로, 합의 직후 내용을 글로 남겨 두는 것이 이런 다툼을 줄이는 방법이 됩니다.
사례에서 B가 "통화 때 단가를 잘못 말했다"며 착오를 내세우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단가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인지, B가 조금만 주의했으면 착오를 피할 수 있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됩니다. 업체가 스스로 정해 제시한 금액이라면 중대한 과실이 문제 될 여지가 있고, 납품을 모두 받은 뒤에야 착오를 주장했다는 사정도 함께 고려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다툼에서도 통화 당시 누가 금액을 먼저 제시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 중요해집니다.
작성 시 점검
이미 분쟁이 생겼다면 아래 자료를 날짜 순서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각 자료가 계약의 성립을 보여 주는지, 금액을 보여 주는지를 옆에 적어 두면 부족한 부분이 드러납니다.
- 통화 기록: 통화 일시와 상대방 번호가 보이는 화면을 보관하고, 녹음이 있다면 원본 파일과 녹취록을 함께 준비합니다.
- 합의 직후 메시지: 금액·편수·납기를 적어 보낸 메시지와 그에 대한 상대방의 답장, 또는 답장 없이 이어진 작업 지시를 확보합니다.
- 작업 진행 기록: 원본 파일 수신, 수정 요청, 완성본 전달 내역은 계약 성립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됩니다.
- 대금 관련 기록: 일부 입금 내역, 견적서·세금계산서 발행 내역, 과거 같은 단가로 거래한 기록은 금액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됩니다.
- 상대방의 반응: 대금 청구에 대한 답변 가운데 금액이나 작업 사실을 인정하는 표현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목록을 채운 뒤에는 금액을 직접 보여 주는 자료가 하나라도 있는지 확인합니다. 작업 진행 기록만 있고 금액 자료가 없다면, 같은 업무의 통상적인 단가를 보여 줄 수 있는 자신의 다른 거래 견적서나 정산 내역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상당한 보수를 따지는 단계에서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계약서를 쓰기 어려운 거래를 맡는다면, 통화한 날 바로 "오늘 통화로 정한 내용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작업 범위, 단가, 수정 횟수, 납기, 지급일을 메시지나 이메일로 보내고 상대방의 확인 답장을 받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보증처럼 서면이 효력 요건인 약속은 서명이나 기명날인이 있는 문서로 받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끝내 지급하지 않으면 내용증명으로 청구 내용과 근거를 밝히고, 그 뒤 지급명령(민사소송법 제462조)이나 소송목적의 값이 3,000만 원 이하인 사건에 적용되는 소액사건 절차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개인이 소비자로서 수리나 인테리어를 사업자에게 구두로 맡겼다가 분쟁이 생겼다면 소비자24에서 소비자 피해 상담과 구제 절차에 관한 안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의 결론은 확보한 자료와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