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의 내용
이 글은 주택 임대차계약 만료를 앞두고 퇴거를 준비하는 임차인을 위해 씁니다. 계약서 특약사항란에 「임차인은 퇴거 시 입주 전 상태로 원상복구하며, 도배·장판·청소 비용 일체를 부담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고,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도배·장판 교체비를 빼겠다고 알려 온 상황을 가정합니다. 이 글이 다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특약 문구가 넓게 적혀 있을 때, 2년 동안 평범하게 살면서 생긴 벽지 변색이나 장판 눌림 같은 자연 마모까지 임차인이 부담해야 하는지입니다.
원상복구 조항은 대개 세 가지 형태로 쓰입니다. 첫째는 「임차인은 원상복구한다」처럼 범위를 적지 않은 일반 조항입니다. 둘째는 「도배·장판 비용 일체」처럼 항목을 적으면서 '일체'라는 말로 범위를 넓힌 조항입니다. 셋째는 「반려동물로 인한 훼손」「못 자국」「흡연으로 인한 변색」처럼 원인과 항목을 함께 적은 조항입니다. 같은 원상복구 특약이라도 이 가운데 어느 형태인지에 따라 공제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계약서를 읽을 때는 먼저 특약 문장에 '무엇을'과 '왜'가 함께 적혀 있는지 확인합니다. 앞의 가정 사례처럼 항목은 적혀 있지만 원인이 없고 '일체'라는 말만 붙어 있다면 둘째 형태에 해당합니다. 이어서 입주 당시 도배·장판이 새것이었는지, 이전 임차인이 쓰던 상태였는지를 확인합니다. '입주 전 상태'가 무엇이었는지가 원상복구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근거 법령
원상회복의무의 기본 근거는 민법입니다. 민법 제654조는 사용대차에 관한 제615조를 임대차에 준용하며, 제615조는 차주가 목적물을 반환할 때 원상에 회복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또한 민법 제374조는 특정물을 인도할 채무자가 인도할 때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이 두 조문을 함께 보면 임차인이 돌려줄 대상은 '새것'이 아니라 '선량하게 관리하며 통상적으로 사용한 상태의 집'으로 해석됩니다.
통상의 사용으로 생기는 마모, 즉 통상손모는 임대인이 차임을 받는 대가로 예정한 손실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따라서 특약이 없으면 햇빛에 의한 벽지 변색, 가구 자리의 장판 눌림, 오래된 설비의 노후는 임차인의 원상회복 범위에서 제외됩니다. 반면 임차인의 고의나 과실로 생긴 파손, 임대인 동의 없이 설치한 시설, 관리 소홀로 커진 훼손은 원상회복 대상에 포함됩니다.
통상손모와 훼손을 가르는 판단 기준은 대체로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하나는 주거 용도에 맞게 보통의 방법으로 사용했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보존을 위한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았는지입니다. 예를 들어 결로로 벽지에 곰팡이가 생긴 경우에도 환기를 해 왔고 하자를 임대인에게 알렸다면 임차인 책임으로 보기 어렵고, 수선이 필요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방치해 손해가 커졌다면 늘어난 부분은 임차인 부담으로 다투어질 수 있습니다.
한편 민법 제652조가 열거한 강행규정에는 제654조가 들어 있지 않으므로, 원상회복의 범위는 당사자가 특약으로 달리 정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그 특약도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의 한계 안에서만 효력이 있습니다. 임대인이 같은 서식을 여러 임차인에게 반복해 쓰는 경우에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인지도 검토 대상이 됩니다.
효력이 인정되는 경우
특약이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에게 지우는 효력을 가지려면,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임차인이 그 의미를 알고 합의했다는 점이 드러나야 한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예컨대 「계약 종료 시 거주 기간과 상태에 관계없이 거실·방 도배 전체 교체비를 임차인이 부담한다」처럼 대상과 범위를 특정하고, 그 대가로 차임이나 보증금을 시세보다 낮게 정한 사정이 계약서나 문자 기록에 남아 있다면 합의의 효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항목과 원인을 함께 적은 조항도 효력이 인정되기 쉽습니다. 「반려동물로 인한 바닥 긁힘과 문틀 훼손은 임차인이 보수한다」「실내 흡연으로 인한 벽지 변색은 임차인이 도배 비용을 부담한다」 같은 문구는 통상의 사용을 넘어선 원인을 특정하고 있으므로, 해당 사실이 확인되면 보증금에서 실제 보수비를 공제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때에도 공제액은 실제 발생한 비용과 훼손 범위에 비례해야 합니다.
합의가 있었는지는 문구만이 아니라 계약 경위로도 확인됩니다. 계약 당시 원상복구 범위를 따로 설명받았는지, 특약 옆에 별도로 서명하거나 날인했는지, 계약 전에 주고받은 메시지에 통상손모 부담이 언급되었는지가 판단 자료가 됩니다. 반대로 인쇄된 서식에 들어 있던 문구를 설명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통상손모까지 부담한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방향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무효·취소되는 경우
「원상복구 비용 일체」처럼 범위가 넓게만 적힌 조항은 문구 자체가 무효라기보다, 해석 단계에서 통상손모를 제외하는 방향으로 좁게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차인에게 불리한 의무를 새로 지우는 조항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으면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확장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계약 해석의 일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약관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가 정한 작성자 불이익 해석 원칙도 함께 적용됩니다.
앞의 가정 사례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햇빛에 바랜 벽지와 침대 자리에 눌린 장판은 '일체'라는 표현만으로 임차인 부담이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같은 집에서 가구를 끌다가 장판이 찢어진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일반 조항에 따르더라도 공제 대상이 됩니다. 이때에도 방 전체를 새로 까는 비용이 아니라 훼손된 범위와 기존 자재의 사용 상태를 고려한 금액으로 다투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항이 명확하더라도 효력이 부정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 보수비를 크게 넘는 정액 공제를 정하거나, 입주 당시 이미 낡아 있던 부분을 새것으로 바꾸는 비용까지 임차인에게 지우는 내용이 임차인의 궁박이나 경솔을 이용해 체결되었다면 민법 제104조의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반복 사용되는 서식이라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무효 주장이 가능한지 검토됩니다. 또한 착오나 사기로 서명했다면 민법 제109조, 제110조에 따른 취소 문제가 별도로 생깁니다. 다만 무효·취소 여부는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되므로, 결론을 미리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작성 시 점검
아래는 같은 '도배·장판' 항목이라도 조항 형태에 따라 공제 범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한 것입니다. 실제 결론은 계약 경위와 입주·퇴거 당시 상태 기록에 따라 달라집니다.
- 범위 없는 일반 조항: 통상손모는 제외되고, 임차인의 고의·과실로 인한 훼손만 공제 대상이 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일체' 표현만 있는 조항: 의미가 불분명하면 통상손모를 제외하는 방향으로 좁게 해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항목·원인을 특정한 조항: 해당 원인이 확인되면 실제 보수비 범위에서 공제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거주 상태와 무관하게 전체 교체를 정한 조항: 명확히 합의하고 대가가 반영되었다면 효력이 인정될 여지가 있으나, 과도하면 불공정성 판단 대상이 됩니다.
퇴거를 앞둔 임차인은 다음 자료를 준비해 두는 것이 공제액 협의에 도움이 됩니다.
- 입주 당일과 퇴거 직전에 같은 위치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날짜가 보이게 정리합니다.
- 계약서 특약 문구와, 계약 당시 원상복구 범위를 두고 주고받은 문자나 메일을 확보합니다.
- 임대인이 제시한 공제액에 대해 견적서나 영수증 등 실제 비용 자료를 요청합니다.
- 임대차 기간 중 집주인이 바뀌었는지 인터넷등기소에서 등기사항증명서를 열람해 현재 소유자를 확인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에 따라 양수인이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므로, 보증금 반환과 공제 협의의 상대방이 누구인지 정해집니다.
- 협의가 되지 않으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4조 이하의 분쟁조정 절차를 검토합니다. 조정 창구 가운데 하나를 운영하는 한국부동산원의 안내에서 신청 방법과 대상 분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절차의 순서도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퇴거 전에 임대인과 함께 집 상태를 확인하고, 공제하려는 항목과 금액을 항목별로 적어 달라고 서면으로 요청합니다. 항목마다 통상손모인지 훼손인지에 대한 의견을 적어 회신하면 다툼이 있는 부분이 좁혀지며, 다툼이 없는 보증금 부분은 먼저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협의를 나눌 수 있습니다.
새로 계약서를 쓰는 경우라면 원상복구 조항에 '통상의 사용에 따른 마모는 제외한다'는 문구를 넣고, 임차인이 부담할 항목과 원인을 구체적으로 적어 두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령 해석을 설명한 것이며, 개별 사안의 결론은 계약 경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지므로 필요하면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